재갈매기와 큰재갈매기 1주기 동정하기: Part 1. 어린 갈매기는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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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2. 17.
거대한 여정의 시작, 또는 심각한 헛발질의 시작
'재갈매기와 큰재갈매기 1주기 동정하기' 글 싣는 순서
Part 1. 어린 갈매기는 너무 어렵다?
Part 2. 재갈매기와 큰재갈매기 1주기 (first-cycle)
Part 3. 재갈매기와 큰재갈매기 1주기 동정하기
Part 4. 재갈매기와 큰재갈매기 1주기 개체 분석
Part 5. 재갈매기 x 큰재갈매기 1주기 하이브리드
Part 6. 1주기 미동정 갈매기
바닷가에서 갈매기들을 볼 때면 늘 함께 보이는 갈색의 갈매기들
처음엔 갈색의 새들이 어린 갈매기들이라는 걸 알게 되는 게 신기하고, 다음엔 그 녀석들이 유조인지 1회 겨울깃인지 알게 되는 게 또 신기하고. 그 다음 알아야 하는 건? 도대체 어떤 종의 어린새인지 알아야 하는 일이 남는다. 물론 관심을 끊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순간 끝없는 두통과 공포가 시작된다.
어린 갈매기는 왜 어려운가?
세상 모든 탐조인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어린 갈매기들. 이들은 왜 이렇게 어려운걸까?
도감을 펼쳐 어린 갈매기들의 식별 기준과 동정 방법을 읽고 나면, 이 녀석들을 찾고 구별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오른다. 도감에서는 어린 갈매기들의 전형적이고 극단적인 특징들을 설명하고 있고, 이런 특징들만 잘 기억해 두면, 현장에서 이들을 구별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그런 기대와 희망이 꺼지는 건 한 순간. 바닷가에서 만나는 어린 갈매기들은 도대체 왜 그렇게 생겨 먹은 건지. 도감에서 말하는 기준을 충족하는 개체들을 찾는 건 너무나 어렵고 어렵다. 전형적이고 극단적인 특징들이 눈에 보여야 하는데, 각 종의 특징들이 섞여서 나타나는 개체들이 잔뜩!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걸까? 어린 갈매기들의 동정을 어렵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1. 너무나 많은 인풋
왼쪽에 서 있는 다 자란 갈매기를 보자. 머리와 뒷목의 줄무늬, 중간 정도의 어둡기를 보여주는 등판의 회색, 샛노란 부리와 아랫부리 붉은점, 분홍색 다리, 첫째날개의 특징과 깃갈이 정도를 종합하면, 이 갈매기는 한 눈에 '재갈매기' 성조로 동정이 된다.
※ 2부를 쓰기 전에 다시 이 글을 읽으면서 사진을 보니 왼쪽의 저 녀석 전형적인 '재갈매기 성조'가 아니다. P8까지 깃갈이가 완료되어 있고, 부리 기부 폭이 좁고, 머리와 뒷목의 줄무늬가 약하고, 다리에 노란 기운이 섞여서 나타나고 있다. 이건 재갈매기와 줄무늬노랑발갈매기 하이브리드의 전형적인 특징들. 이 녀석은 '재갈매기와 줄무늬노랑발갈매기의 하이브리드 성조'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 하필 이 사진을 가지고 온걸까? ㅠㅠ [2023.02.21.에 내용 추가함]
그러면 오른쪽에 서 있는 어린 갈매기를보자. 자~ 이제 어디를 봐야 이 녀석의 정체를 알수 있게 되는 걸까? 도대체 이 녀석은 어떤 갈매기의 어린 새인걸까? 등판과 덮깃에 나타나는 저 수많은 무늬들은 또 뭔가? 저 무늬들을 하나하나 살펴봐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도 동정이 가능한 걸까?
어린 갈매기들을 관찰하고 동정하려 할 때 가장 넘기 힘든 관문은 '수 많은 정보의 인풋', 그리고 그로 인한 사고 회로의 과부하. 보아야 하고, 기억해야 하고, 판단해야 하는 정보가 너무 많은 탓에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막막해져 버리는. 결국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어린 갈매기들의 저 정신없어 보이는 무늬들은.
2. 비슷비슷한 외모
어린 갈매기들은 흰색과 갈색이 조합된 정말 비슷한 모습들을 보여주곤 한다. 위 사진에서 재갈매기(Vega Gull)와 큰재갈매기(Slaty-backed Gull)의 어린 새를 살펴 보자. 무언가 결정적인 차이점이 한 눈에 보이는가? 아래 사진의 한국재갈매기(Mongolian Gull)와 줄무늬노랑발갈매기(Taimyr Gull)의 모습은 또 어떤가?
얼핏 보면, 몸매, 머리의 모양, 색감에서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몸매나 모리의 모양은 자세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이들의 색은 빛 상태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부분들을 절대적인 식별 기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 어린 새들은 왜 이렇게 비슷하게 생겨 먹은 걸까?
3. 지나치게 넓은 스펙트럼
복잡한 무늬와 비슷한 외모 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이들이 보여주는 스펙트럼(변이 범위)은 또 굉장히 넓어서 도대체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게 존재할까 싶은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여러분은 어린 큰재갈매기의 전형적인 모습을 알고 있는가? 1월 중순에 촬영한 어린 큰재갈매기의 모습들을 한 번 살펴 보자. 어떤가? 이 녀석들이 같은 종(큰재갈매기)의 모습으로 보이는가? 어린 큰재갈매기들은 정말 같은 종의 새라고 보기 어려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첫째날개의 색을 살펴 보자. 도감의 설명(큰재갈매기는 재갈매기와는 달리 첫째날개가 연한 흑갈색이다)과는 달리 큰재갈매기의 첫째날개는 연한 갈색부터 짙은 흑갈색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그러면 첫째날개의 색은 큰재갈매기의 식별 기준으로 의미가 없어지는 걸까? 이러한 폭 넓은 스펙트럼을 고려한다면 첫째날개의 색은 어린 큰재갈매기의 식별 기준으로 여전히 사용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더이상 절대적인 식별 기준은 될 수 없을 것이다.
Mars Muusse의 유럽 갈매기 도감을 보면, 어린 큰재갈매기의 식별 기준으로 완전히 뭉개지고 표백된 큰날개덮깃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위 사진을 보면, 한 개체(위쪽 사진 중 왼쪽)는 그런 모습을 보여 주고 있지만, 다른 개체들은 재갈매기와 비슷한 반점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현장에서 어린 큰재갈매기들을 관찰해 보면 큰날개덮깃의 스펙트럼도 표백된 패턴부터 반점 패턴(재갈매기에서 주로 나타나는 패턴)까지 꽤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니 어떤 종이 가지고 있는 폭 넓은 스펙트럼을 이해하지 못한 채 도감의 설명에만 의존한다면, 그 설명과 딱 맞아 떨어지는 개체들을 제외한 수많은 개체들을 외면하거나 미동정으로 남겨두게 될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도감의 설명대로 뭉개지고 표백된 큰날개덮깃을 큰재갈매기 어린 새의 식별 기준으로 삼아 동해에서 만나게 되는 어린 갈매기들을 동정하다 보면, 정말 소수의 개체만 큰재갈매기 어린 새로 남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엄청나게 많은 수의 큰재갈매기 성조와 아주 소수의 큰재갈매기 어린 새가 존재한다는 엉뚱한 결과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면 이들이 보여주는 변이의 폭을 이해하고, 식별 기준을 올바르게 적용하여야 한다.
위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어린 갈매기들은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기 때문에 현장에서 이들을 식별하는 일은 정말 간단치가 않다. 이들이 보여주는 폭 넓은 스펙트럼을 파악하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이들을 식별하는 일에 뛰어드는 건 때론 어리석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4. 식별 기준의 부족
이렇게 까다로운 어린 갈매기들을 식별함에 있어서 정확도를 높이려면 두 가지 방법이 필요하다. 하나는 다양한 식별 기준의 정립, 그리고 그렇게 정립한 식별 기준의 광범위한 조합.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아시아의 갈매기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탓에 우리나라에 도래하는 어린 갈매기들에 대한 식별 기준은 충분하지 않고, 여전히 많은 것들이 베일에 싸여 있다. 앞으로 이런 식별 기준들이 점차 밝혀지고, 보다 많은 식별 기준을 조합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의 식별은 점차 나아질 것이다.
어떻게 해야 어린 갈매기들을 구별할 수 있게 될까?
너무나 안타깝지만, 어린 갈매기들을 간단하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어린 갈매기들이 보여주는 저 복잡한 무늬들과 폭 넓은 스펙트럼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들이 보여주는 비밀들을 하나하나 우직하게 파헤쳐 나가는 정공법만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눈 돌리게 되면, 영원히 이들의 정체를 알 수 없게 된다.
그럼 이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 걸까? 어떤 절차와 방법으로 이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걸까?
1. 갈매기 토포그래피에 대한 이해와 숙달
어린 갈매기들을 동정하려면, 그들이 보여주는 정보들을 하나하나 읽어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해두어야 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갈매기의 몸과 깃차림 각 부분에 대해 이해하고 좀 더 익숙해지는 일이다. 갈매기 몸의 구조, 노출 부위, 깃차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이들을 마주할 때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정보들을 더 많이 읽어낼 수 있게 되고, 이렇게 읽어 낸 정보들은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 중요한 재료가 된다.
어린 갈매기를 대상으로 토포그래피를 이해하는 일은 판단을 방해하는 복잡한 무늬들로 인해 사실 꽤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어린 갈매기들을 관찰하기 전에, 다 자란 갈매기들을 대상으로 몸의 각 부위와 깃차림을 익히면서 감각을 길러가는 편이 좋다. 이러한 절치를 거치지 않고, 도감에 쓰여진 몇 줄의 특징 만으로 어린 갈매기들을 구별해 내려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 될 것이다.
2. 어린 갈매기의 특징과 식별 기준을 가능한 많이 알아두기
첫 번째 과정을 마치고 나면, 도감을 펼쳐보자. 그리고 각 종의 어린 갈매기들이 가지게 되는 특징들과 식별 기준을 가능한 많이 알아두자. 물론 갈매기 전문 도감이 아닌 일반 도감의 제한된 정보만으로는 어린 갈매기들을 구별해내는 건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웹 상에 얼마나 정보가 많은가? 잠깐의 검색 만으로도 각 종의 어린 갈매기들에 대한 넘치는 정보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도래하는 갈매기 정보 관련 웹사이트
• A consideration of "The Herring Gull Assemblage" in South Korea
Nial Moores님이 2003년 작성한 우리나라에 도래하는 재갈매기류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
• 먼발치에서
심헌섭님이 강릉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갈매기들을 오랜동안 관찰하면서 모은 자료들을 쌓아둔 보물 창고.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개체들 컬렉션과 날카로운 식견에 늘 놀라곤 하는.
• Gull Research Organisation
유럽의 갈매기 연구자들과 탐구자들이 모여 갈매기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만든 데이터 베이스. 유럽, 중동, 북아프리카, 북미 지역에서 관찰되는 갈매기에 관한 정보들(연령별 사진, 논문, 분석 방법 등)을 체계적으로 모아 놓은, 갈매기에 관한한 세계 최고의 사이트. 최근 정보가 부족한 아시아 갈매기에 관심을 가지고 정보 구축 중.
(나 또한 GRO의 유일한 아시아 멤버. GRO 첫 화면에서 필자의 사진을 찾아 보시라! ^^)
3. 어디를 봐야 하는 지 알아 두기
이렇게 도감과 웹 상의 정보들을 이용해서 어린 갈매기들을 구별하기 위한 나름의 자료를 만들었다면 이젠 현장으로 나가서 그들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치게 되는 또 다른 문제! 어린 갈매기 한 마리가 내 앞으로 아장아장 걸어 오게 될 때, 갑자기 눈 앞에 들이 닥치는 수많은 정보들. 수많은 정보가 주어진다 해도, 적절한 프로세스에 따라 정보들을 조합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면 그건 정보가 아니라 파편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니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한다. 현장에서 어린 갈매기들을 만났을 때, 어떤 순서에 따라 어디를 봐야 하는 지. 그리고 어떤 기준을 가지고 판단을 내려야 하는 지. 이 글을 진행해 나가면서 다루게 될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닐지? 글을 읽어 나가면서 여러분 스스로의 식별 프로세스를 만들어 보시길.
어린 갈매기의 복잡한 무늬는 재앙이 아닌 축복!
어린 갈매기의 복잡한 무늬들은 이들을 마주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기 전에는 두통을 유발하는 재앙일 수 있겠지만, 관심을 가지고 정면으로 마주하고자 한다면 분명 커다란 축복이 될 것이다. 다 자란 갈매기들의 등판과 덮깃에서 읽어낼 수 있는 정보들은 제한적인 반면, 어린 갈매기들은 어깨깃, 덮깃, 셋째날개에 수 많은 정보들을 담고 있다. 이 정보들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이들의 식별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복잡 다단했던 무늬들은 재앙이 아닌 축복인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어린 갈매기들을 마주하러 뚜벅뚜벅 걸어가 보자.
여러분의 댓글과 공감은 저에게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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