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흑로, 하얀 흑로

[Birds of Borneo]

검은 흑로, 하얀 흑로

Pacific Reef Heron: Color Morphs


작년 여름 보르네오에서 만난 하얀 흑로 이야기[하얀 흑로가 있을까? 2016년 9월 11일]를 듣고 많은 분들이 녀석을 만나고 싶어하셨었다. 하여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녀석을 만나는 일을 신경써서 준비해 두었다. 정글 여행을 마치고 코타 키나발루로 돌아온 다음날 아침 제일 먼저 이 녀석을 만나러 갔다.


Pacific Reef Heron(Egretta sacra) Two Color Morphs. Borneo. August 2017 ⓒ Larus Seeker


코타 키나발루에서 유명한 필리피노 마켓 오른쪽에 있는 어시장(Sabah Fish Market)에서 녀석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어부들이 고기를 손질하는 옆에서 생선을 노리면서 서 있는 녀석들을 보니 데자뷰깉은 느낌이 들었다. 작년에 이 녀석을 만났던 날을 찾아 보니 2016년 8월 17일. 정확히 일년 만의 재회. 비슷한 시기에 방문한 탓도 있겠지만 우연의 일치라곤 해도 기분은 좋다. 


Sabah Fish Market, Borneo ⓒ Google Maps


검은 흑로와 하얀 흑로,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백로는 하얗고, 흑로는 검다.' 얼핏 당연해 보이는 이 명제는 하얀 흑로로 인해 무너져 버린다. 온몸이 하얀 백로와 달리 흑로는 검게 보이는 암색형(Dark Morph) 외에도 하얗게 보이는 담색형(Light Morph)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얀 흑로. 뭔가 이상한 조합의 단어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는 우리나라에는 암색형의 흑로만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제주와 남쪽의 해안가를 중심으로 암색형만 나타나지만 저위도 지역에는 담색형(하얀 흑로)이 살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암색형 흑로(검은 흑로)는 북위 41˚~남위 46.5˚ 지역에서 살고 있고, 담색형 흑로(하얀 흑로)는 북위 30˚~남위 34˚ 지역에서 살고 있다. 북위 30˚~남위 34˚ 지역에서는 두 가지 표현형이 함께 서식하게 되는 셈인데, 암색형은 열대부터 온대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걸쳐 서식하고, 담색형은 열대와 아열대지역을 중심으로 서식하고 있는 것이다. 표현형에 따라 서식 지역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 그보다 먼저, 같은 종인데 이렇게 표현형이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Distribution Map of Pacific Reef Heron BirdLife International 2016    

    

그렇다면 왜? 왜 어떤 흑로는 검고, 어떤 흑로는 하얗게 생겼을까? Wikipedia에서는 표현형이 다른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위장(Camouflage)'과 깊은 연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와는 다른 의견도 있는데 Sievert Rohwer가 IBIS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두 표현형의 섭식 행동의 차이가 이렇게 다른 표현형을 만들어 냈을 거라고 서술하고 있다. 

글쎄 어떤 쪽일까? 위장, 섭식 행동의 차이? 두 표현형(암색형과 담색형)이 꽤 넓은 구역에서 서식장소가 겹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흑로의 경우에 있어서는 표현형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가  '위장' 때문이라는 설은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면 남는 건 섭식 행동의 차이인데, Fish Market에서 관찰한 섭식 행동이야 생선 훔쳐먹기가 전부여서 이에 대한 판단을 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되지만, Sievert Rohwer가 논문에서 지적하고 있는 두 표현형의 섭식 행동의 차이 때문이라는 설명은 꽤 그럴싸해 보인다. 내 짧은 경험으로 정확한 이유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현재로서는 흑로의 표현형이 두 가지로 나타나는 이유는 섭식 행동의 차이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 시간이 되고 연이 허락한다면 두 표현형의 섭식 행동의 차이를 관찰해 보고 싶다.


흑로의 표현형이 두 가지(암색형과 담색형)로 나타나는 이유는 섭식 행동의 차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 Sievert Rohwer(1990, IBIS) -



Mantanani Island에서 만난 흑로 암색형

Pacific Reef Heron Dark Morph. Mantanani Island, Borneo. 10 August 2017 ⓒ Larus Seeker

우리나라 제주에서 만나는 흑로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더 반가운. 흑로는 온대부터 열대까지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지만 단 2개의 아종만이 존재하는데, 호주의 동쪽에 있는 뉴칼레도니아의 Loyallty Island에 사는 E. s. albolineata를 제외하면 모두 E. s. sacra로 전세계에 분포하는 종이 같은 아종이 되는 셈이다. 즉, 제주의 흑로와 Mantanani Island의 이 녀석은 3,200km나 떨어져 있지만 같은 아종이라는 이야기.


Sabah Fish Market에서 만난 흑로 담색형

Pacific Reef Heron Light Morph. Sabah Fish Market, Borneo. 17 August 2017 ⓒ Larus Seeker

얼핏 보면 노랑부리백로 비번식깃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녀석은 하얀 흑로. 노랑부리백로에 비해 짧고 굵은 다리와 좀 더 편평한 두상, 아랫부리의 색 패턴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A. Pacific Reef Heron : Dark Morph

   

Pacific Reef Heron Dark Morph. Mantanani Island, Borneo. 10 August 2017 ⓒ Larus Seeker


Pacific Reef Heron Dark MorphSabah Fish Market, Borneo. 17 August 2017 ⓒ Larus Seeker

이 녀석은 시장에서 슬슬 눈치를 보다가 어부들이 정리하다가 흘린 생선을 잽싸게 주워 먹고 있었다. 바닷가에서 보이는 우아한 모습과는 달리 인간들에 기대어 사는 모습이 어딘가 애처로워 보인다.


Pacific Reef Heron Dark Morph. Mantanani Island, Borneo. 10 August 2017 ⓒ Larus Seeker

어시장에서 만나던 녀석과는 다르게 섬의 해안가에서 걷고 있던 이 녀석은 꽤 여유로워 보였다. 실상은 전혀 여유롭지 않은 배고픈 흑로였으려나?


Mantanani Island, Borneo. 11 August 2017 ⓒ Larus Seeker

녀석이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던 Mantanani Island의 해변. 물고기가 그닥 많아 보이지는 않던데, 녀석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으려나?


Pacific Reef Heron Dark Morph. Mantanani Island, Borneo. 10 August 2017 ⓒ Larus Seeker


Pacific Reef Heron Dark Morph. Mantanani Island, Borneo. 10 August 2017 ⓒ Larus Seeker

제주의 해안가 검은 화산암 지대에서 사냥을 하는 흑로와는 다른 느낌이라 신선했다.


Pacific Reef Heron Dark Morph. Mantanani Island, Borneo. 10 August 2017 ⓒ Larus Seeker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흑로는 다른 백로류에 비해 다리가 매우 짧아서 비행을 할 때 꼬리 뒤로 다리가 많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기껏해야 해오라기 정도 튀어 나오는 듯. 노랑부리백로도 다리가 긴 편은 아니지만 흑로에 비하면 꼬리 뒤로 다리가 더 많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


B. Pacific Reef Heron : Light Morph

   

Pacific Reef Heron Light Morph. Sabah Fish Market, Borneo. 17 August 2017 ⓒ Larus Seeker

이 녀석 역시 어시장에서 어부들의 작업을 지켜 보면서 먹이를 노리고 있었다.


Pacific Reef Heron Light Morph. Sabah Fish Market, Borneo. 17 August 2017 ⓒ Larus Seeker

뒤 쪽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대백로와 덩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대백로의 반도 안되는 크기. 언젠가 어느 인터넷 생태 관련 카페에서 흑로가 어려서 작은 거지 다 자라면 백로만큼 커진다는 글을 읽고 조용히 웃었던 적이 있다. 정말 이 녀석이 더더더 자라면 뒤에 있는 대백로만큼 커지는걸까? ^^


Pacific Reef Heron Light Morph. Sabah Fish Market, Borneo. 17 August 2017 ⓒ Larus Seeker


Pacific Reef Heron Light Morph. Sabah Fish Market, Borneo. 17 August 2017 ⓒ Larus Seeker

우아하게 길게 뻗은 백로들의 다리와 달리 굵고 짧은 다리가 인상적이다. 우아하진 않지만 강인해 보이는.


Pacific Reef Heron Light Morph. Sabah Fish Market, Borneo. 17 August 2017 ⓒ Larus Seeker



노랑부리백로와 비교해 보기

흑로 담색형은 노랑부리백로 비번식깃과 상당히 비슷하게 생겼다. 실제로도 두 종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서 봐도 제일 가까운 근연종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녀석이 우리나라에 나타난다면(현재 진행중인 온난화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비슷한 생김으로 인해 눈 앞에서 녀석을 보고도 모르고 지나칠 수 있지 않을까? 

   

하얀 흑로와의 비교를 위한 노랑부리백로 비번식깃의 적당한 사진이 없어 자세한 비교는 뒤로 미루고자 한다. 아래의 노랑부리백로 사진 두 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Chinese Egret non-breedingLaem Pak Bia District, Thailand. 26 March 2016 ⓒ Tony Castro

출처: TonyCastro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Chinese Egret non-breedingLaem Pak Bia District, Thailand. 20 November 2012 ⓒ JJ Harrison

출처: JJ Harrison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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