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이 녀석은 옅은재갈매기[American Herring Gull]가 아닌걸까?

도대체 왜 이 녀석은 옅은재갈매기가 아닌걸까?

I wonder why this is not a American Herring Gull?

 

American Herring Gull? Sodol port, Gangwon. 12 January 2016. ⓒ Larus Seeker

 

지난 동해 탐조에서 옅은재갈매기로 보이는 두 개체를 만났다. 옅은 회색의 등판과 노란색의 눈테와 연한 노란색의 홍채를 가진 개체들. 이런 특징들로 볼 때 옅은재갈매기로 동정하면 되겠지만 뭔가가 미묘하게 어긋난 느낌 때문에 동정이 망설여졌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걸까? 어디가 어긋난거지? 녀석들에 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A. 주문진에서 만난 개체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이 녀석의 등판 회색은 주변에 있는 재갈매기보다 좀 더 연한 회색을 보여 주었다. 눈테는 옅은재갈매기의 중요한 필드 마크인 노란색, 홍채도 검은 반점이 거의 없는 연한 노란색. 이 정도면 옅은재갈매기로 봐도 무방할 터.

 

주문진 개체에서 보이는 옅은재갈매기로서의 특징

 등판의 회색이 주변의 재갈매기보다 더 연하다

 눈테가 진한 노란색이다

 홍채가 어두운 반점이 전혀 없는 연한 노란색이다

 

그러나 옅은재갈매기로 보기엔 마음에 걸리는 특징들도 있었다. 우선 첫째날개의 길이가 너무 짧다. 옅은재갈매기라면 P7의 날개끝 하얀 반점이 꼬리 바깥으로 돌출되어야 하는데, 이 녀석은 첫째날개가 무척 짧고 P7의 하얀 반점이 꼬리 안쪽으로 떨어지고 있다. 또한 옅은재갈매기는 날개 끝 하얀 반점이 크지 않은 편인데, 이 개체는 날개 끝 하얀반점이 지나치게 크게 형성되어 있었다. 노란색의 눈테도 조금 부자연스러웠는데, 옅은재갈매기의 전형적인 형태처럼 충분히 두껍고 진한 노란색이 아니라 조금 더 얇고 마치 두 가지 색이 섞인 듯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주문진 개체에서 보이는 옅은재갈매기와는 다른 특징

 첫째날개의 길이가 너무 짧다(P7의 날개 끝 하얀 반점이 꼬리 안쪽으로 떨어짐)

 날개끝 하얀 반점이 지나치게 크다

 노란색 눈테가 너무 얇고 마치 두 가지 색이 섞인 것처럼 보인다

 

 

재갈매기 × 흰갈매기 조합이라면 설명이 가능하다?

주문진 개체가 보여주는 이러한 특징들을 만족하는 종은 뭐가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잡종까지 고려할  때 떠올릴 수 있는 종은 하나. 바로 재갈매기와 흰갈매기의 조합이다. 주문진의 개체가 두 종의 조합이라면 짧은 첫째날개의 길이, 커다란 날개끝 하얀 반점, 연한 회색의 등판, 노란색 눈테와 연한 노란색 홍채까지 모두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면 이걸로 동정을 마쳐도 되는걸까?

 

재갈매기에 더 가까운 재갈매기 × 흰갈매기 잡종이 존재할까?

주문진의 개체가 재갈매기와 흰갈매기의 조합이라면 대부분의 특징들을 설명할 수 있다고 가정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에는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문제가 하나 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Ujihara의 갈매기도감에서 묘사하고 있는 두 종의 잡종은 주문진 개체와는 여러 모로 달라 보인다. Ujihara는 두 종의 잡종이 성조에서는 흰갈매기와 더 유사하며, 미성숙개체에서는 재갈매기와 더 유사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Glaucous Gull × Vega Gull ⓒ Ujihara

 

우리나라에서 재갈매기 × 흰갈매기 잡종 관찰 사례

 Glaucous X Vega Hybrid Gull   Aves Korea

 잡종[흰갈매기+재갈매기] Hybrid Gulls  Gulls in Korea

 

우리나라에서 관찰된 두 종의 잡종을 살펴 보면, 첫번째 사례에 등장하는 개체는 흰갈매기에 훨씬 더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반해 심헌섭선생님이 관찰한 두 번째 사례는 재갈매기와 흰갈매기의 중간 특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주문진 개체와도 꽤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개체는 흰갈매기에 가깝고, 어떤 개체는 두 종의 중간 특성을 보여주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잡종 2세대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주문진의 개체는 어떻게 봐도 흰갈매기에 가까운 모습이 아니며, 재갈매기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재갈매기와 흰갈매기의 잡종에서 재갈매기의 모습을 닮은 잡종이 가능할까? 이에 대한 내 생각은 '가능하다' 이다. 수리갈매기 × 큰재갈매기 잡종 관련 글에서 다뤘던 것처럼 두 종의 잡종이 발생할 때 역교배가 이루어지면(갈매기들 사이에서 역교배는 꽤 쉽게 일어나곤 한다), 어느 한쪽에 훨씬 더 가까운 특성을 보이는 2세대의 잡종 개체(B1)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갈매기 × 흰갈매기의 잡종에서도 재갈매기에 조금 더 가까운 잡종이 발생한다거나 재갈매기와의 역교배에 의해 재갈매기와 더 닮아 있는 잡종 2세대가 충분히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에 대해서는 추후 좀 더 많은 필드 관찰이 필요할 테지만 말이다. 이런 가정을 바탕으로 추측해 보자면, 주문진 개체는 재갈매기와 흰갈매기의 잡종 개체(F1)가 재갈매기와 역교배하여 발생한 잡종 2세대(B1)가 아닐까? 그래서 흰갈매기보다는 재갈매기에 좀 더 가까운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

 

역교배[back cross]

서로 다른 종사이에 교배가 일어나 태어나는 잡종(F1)과 부모 중 한 종(이 경우 원래의 부모일 필요는 없으며, 같은 종이면 된다)과의 교배를 역교배라 한다. 이런 역교배로 태어나는 종을 B1이라 하는데, 역교배의 대상이 되는 부모 종에 따라 중간 특성이 아닌 어느 한쪽에 좀 더 가까운 특성을 가지게 된다. 예를 들면 재갈매기와 큰재갈매기의 잡종(F1)은 두 종의 중간 특성을 가지게 되지만, 이 잡종 개체와 부모 중 한 종인 재갈매기와 교배하여 태어나는 개체는 재갈매기와 좀 더 가까운 특성을 가지게 된다. 물론 부모가 우성호모인지 열성호모인지에 따라 표현되는 형질은 달라지게 될 지라도. 

 

 

A-1. 

Jumunjin, Gangwon. 11 January 2016. ⓒ Larus Seeker

연한 등판 회색, 진한 노란색 눈테와 연노랑색 홍채는 옅은재갈매기를 떠오르게 한다.

 

A-2.  

Jumunjin, Gangwon. 11 January 2016. ⓒ Larus Seeker

 

A-3.  

Jumunjin, Gangwon. 11 January 2016. ⓒ Larus Seeker

이 개체가 보여주는 노란색의 눈테는 옅은재갈매기에서 관찰되는 균일하고 굵은 형태가 아니다. 눈테의 굵기는 일정하지 않으며, 눈테의 노란색 또한 일정하지 않다. 순종보다는 주로 잡종에서 이런 균일하지 못한 두께와 색을 가진 눈테가 나타나는 것 같다. 

 

A-4.  

Jumunjin, Gangwon. 11 January 2016. ⓒ Larus Seeker

주문진 개체의 첫째날개는 옅은재갈매기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짧다. 주문진 개체의 첫째날개 P7의 끝이 꼬리 안쪽으로 떨어지고, 꼬리 밖으로 돌출된 길이도 매우 짧다. 옅은재갈매기는 P7의 끝이 꼬리 바깥으로 돌출되며, 날개돌출부(wing projection)가 꽤 길다. 또한 주문진의 이 개체는 날개 끝 하얀 반점의 크기가 옅은재갈매기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크다. 아래에 나타낸 옅은재갈매기의 첫째날개와 비교해 보라. 

 

American Herring Gull. Adult winter. Eodal Port, Gangwon. 22 February 2014. ⓒ Larus Seeker

어달에서 만났던 옅은재갈매기의 첫째날개는 P7의 하얀 반점이 꼬리 바깥쪽으로 돌출되어 있으며 날개돌출부가 꽤 긴 편이다. 날개 끝 하얀 반점은 주문진 개체에 비해 작은데 이것은 옅은재갈매기의 특징 중 하나이다. 2014년 어달 개체에서 보이는 P6-8의 잘 발달된 화이트 텅과 커다란 미러는 우리나라에서 주로 보이는 서부 해안 개체의 특징이 아닌 동부 해안 개체의 특징이어서 이번 비교에서는 신경쓰지 않아도 될 듯하다.

 

 

 

 

B. 소돌항에서 만난 개체

소돌항에서 만난 녀석은 어떨까? 소돌항의 개체는 주문진의 개체와 비슷한 것 같지만 훨씬 더 머리가 아픈 녀석이다. 소돌항의 개체도 연한 회색의 등판과 진한 노란색 눈테를 근거로 옅은재갈매기로 동정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어딘가 묘하게 거슬리는 데가 있는 녀석이다. 그럼 누구라는 건가? 소돌항 개체에서 보이는 진한 노란색의 눈테와 연한 노란색의 홍채는 주문진 개체에서의 설명처럼 재갈매기 × 흰갈매기의 조합으로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그럼 소돌항의 개체도 두 종의 잡종이라는 건가? 그러나 소돌항의 개체는 주문진 개체와 다르게 첫째날개가 재갈매기만큼이나 길고, 주문진 개체에서 나타났던 회색이 섞인 검은색이 아닌 온전한 검은색을 보여주고 있다. 보통 첫째날개의 날개끝 검은띠가 검은색인 종과 연하거나 밝은 두 종이 조합될 경우 첫째날개 검은띠는 (개체에 따라 회색이 섞이는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회색이 섞여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소돌항의 녀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누굴까 소돌항의 녀석은?

 

이 녀석에 대해 Bird Forum에서 의견을 나눠봤는데, 옅은재갈매기라는 의견과 재갈매기×흰갈매기의 잡종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끝이 났다. 그러나 두 의견 모두 이 녀석을 설명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해 보인다. 결국 녀석의 정체는 현재로선 오리무중. 언젠가 녀석에게 이름표를 붙여줄 수 있게 되길!

 

B-1.  

Sodol port, Gangwon. 12 January 2016. ⓒ Larus Seeker

소돌항의 이 녀석은 다시 봐도 옅은재갈매기에 훨씬 가까워 보인다. 등판의 색도 연하고, 다리의 색도 연하고, 전체적인 체형도 일치하고. 마음에 걸리는 건 딱 두 가지! 우선 첫째날개의 날개끝 하얀 반점이 너무 크다. 옅은재갈매기라기엔 지나치게 커 보인다. 두 번째, 노란색 눈테가 너무 얇고 균일하지 않다. 녀석이 순종이라면 눈테가 더 굵고 균일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제시할 수 없다면 이 녀석을 옅은재갈매기로 동정하는 건 피하고 싶다.  

 

B-2.   

Sodol port, Gangwon. 12 January 2016. ⓒ Larus Seeker

두껍지 않은 눈테, 균일한 두께를 보여주지 않는 눈테. 참 거슬린다. 이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찾지 못하고 있다.

 

B-3. 

Sodol port, Gangwon. 12 January 2016. ⓒ Larus Seeker

첫째날개의 날개돌출부를 살펴보면, 소돌의 이 녀석은 첫째날개가 꽤 길다는 걸 알 수 있다. P7의 끝이 꼬리 바깥으로 돌출되고, 날개돌출부도 재갈매기만큼이나 길다. P10의 미러는 매우 크고, 날개끝 하얀반점과 연결되어 오픈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P9에도 미러가 나타나고 있다. P7에도 잘 발달된 화이트 텅이 보인다. 이 녀석의 정말 큰 문제 중 하나는 날개끝 하얀 반점이 너무 크다는 것. 물론 녀석이 북아메리카 서부 해안의 패턴을 보여주는 개체가 아니라 동부 해안의 패턴을 보여주는 개체라 한다면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참고문헌

氏原巨雄・氏原道昭,2004.シギ・チドリ類ハンドブック.文一総合出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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