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업도 해변의 갈매기는 언제 죽었을까?
- GULL ID
- 2014. 6. 10.
굴업도 해변의 갈매기는 언제 죽었을까?
한국재갈매기로 동정된 굴업도 사체의 날개. ⓒ Larus Seeker
새로운 추론의 시작
굴업도에서 주운 갈매기 사체는 몇 가지 추론 과정을 통해 한국재갈매기로 동정되었다. 하지만 이 사체가 한국재갈매기로 동정되었다 해도 몇 가지 의문점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왜 한국재갈매기가 여기에 이렇게 죽어 있는 것일까? 이 한국재갈매기가 죽은 원인은 무엇일까? 누가 죽인거지? 이 한국재갈매기는 언제 죽었으며, 몸톰은 뼈 밖에 남아 있지 않은데 양쪽 날개는 멀쩡한 이유는 무엇일까? 굴업도 해변에 누워있던 한국재갈매기가 품고 있는 수많은 의문점 중 한 가지 의문에 대한 새로운 추론을 시작하려고 한다. 이 한국재갈매기는 언제쯤 죽어서 이 모래 해변에 누워 있게 된 걸까?
한국재갈매기 사체의 상태에 대한 소설같은 추측
이 한국재갈매기 사체의 경우 골격에는 살점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으며, 양쪽날개는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독특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어떻게 이런 독특한 상태로 남아있게 되었을까? 뼈만 남아 있는 골격의 상태와 온전하게 유지된 날개의 상태로 미루어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할 것이다. 첫번째 가능성은 이 한국재갈매기는 죽은 지 얼마되지 않았으며, 어떤 포식자에 의해 몸통의 살이 모두 뜯어 먹혔으며 양쪽날개는 그다지 살이 없어 먹히지 않아 온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또다른 가능성은 이 한국재갈매기는 죽은지 오래 되었으며, 건조한 모래 해안과 바람 덕분에 몸통과 날개가 썩지 않고 온전하게 유지되었으나, 최근에 이 섬을 이동하던 스케빈저(죽은 동물을 먹는 동물)인 독수리들에 의해서 몸통의 살이 뜯어 먹히고 뼈만 남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현재로선 이 소설같은 추측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깃갈이가 진행중인 한국재갈매기 사체
굴업도 사체의 양쪽 첫째날개. ⓒ Larus Seeker
이 사체의 경우 왼쪽 첫째날개는 p10이 절반 가까이 자라 있어 깃갈이가 마무리되기 직전이며, 오른쪽 첫째날개는 p9이 절반 정도 자라 있고 p10은 깃집에서 깃이 막 빠져나온 상태여서 보이지 않는다. 이 개체의 첫째날개 깃갈이는 약 1달 정도 더 지나야 완전히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동정을 위해 날개를 검토하던 중에 이 한국재갈매기가 첫째날개의 깃갈이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이 사체의 첫째날개를 살펴 보면 오른쪽 첫째날개는 9장이고, 왼쪽 첫째날개는 10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럴 경우 날개깃이 어떠한 이유로 빠져 있다는 것인데 양쪽 첫째날개의 맨바깥쪽 깃을 보면 한국재갈매기의 일반적인 첫째날개 패턴과는 달리 그 크기(길이)가 매우 작은 점이 눈에 띈다. 즉, 이 한국재갈매기는 깃갈이 중이며 바깥쪽 깃이 아직 다 자라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 한국재갈매기는 깃갈이가 진행되는 도중에 어떠한 연유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고, 죽음으로 인해서 깃갈이가 채 완료되지 못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개체의 깃갈이 진행 정도를 살펴 보고, 그 진행 정도를 한국재갈매기의 일반적인 깃갈이 시기와 비교해 보면 이 개체가 언제 죽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한국재갈매기의 상태에 따라서 개체 간 깃갈이 시기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시기를 알 수는 없겠지만 대략적인 짐작을 해보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한국재갈매기 사체의 깃갈이는 어디까지 진행되었을까?
이 한국재갈매기의 깃갈이는 어느 정도까지 진행된 것일까?(한국재갈매기의 깃갈이 전반에 관한 자세한 글은 한국재갈매기의 깃갈이 참고) 양쪽날개에서 보여지는 깃갈이 진행 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 보기로 하자.
이 개체의 깃갈이는 조금 특이한 패턴을 보여주는데 왼쪽 첫째날개와 오른쪽 첫째날개의 장 수가 다른 것(왼쪽 첫째날개 10장, 오른쪽 첫째날개 9장)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양 날개의 깃갈이 시기가 서로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갈매기들의 양날개의 깃갈이는 대체로 같은 시기에 같은 패턴으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재갈매기 사체의 왼쪽 첫째날개. ⓒ Larus Seeker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 보면 왼쪽 첫째날개는 p10이 중간 정도 자라 있고, p9은 p8보다 조금 작은 크기를 보여준다. 다 자란 첫째날개의 경우 p9이 가장 길고, p10이 두번째, p8의 길이가 가장 작다( p9 > p10 > p8 ). 따라서 왼쪽 첫째날개의 p9도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p9이 4/5 정도 자라 있고, p10이 중간 정도 자라고 있는 진행상태를 고려하면 이 개체의 왼쪽 첫째날개는 약 보름 정도 지나면 깃갈이가 마무리되는 정도까지 진행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재갈매기 사체의 오른쪽 첫째날개. ⓒ Larus Seeker
한국재갈매기의 첫째날개는 10장인데 반해 이 사체의 오른쪽 첫째날개는 9장 밖에 보이지 않는다. 9장의 첫째날개를 살펴보면, 맨안쪽 첫째날개가 빠지거나 깃갈이 중인 흔적은 보이지 않으며, 중간에 빠져있는 첫째날개깃도 보이지 않는다. 맨바깥쪽 첫째날개깃은 중간 정도 자라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이 오른쪽 첫째날개는 안쪽은 이미 깃갈이를 마쳤으며 맨바깥쪽에서 깃갈이가 진행되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럴 경우 이 사체의 맨바깥쪽 깃은 p10이 아니라 p9이라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개체의 오른쪽 첫째날개 깃갈이는 p9이 절반 정도 자라 있고, p10은 보이지 않는 단계까지 진행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 보니 p10은 깃집에서 막 빠져나온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상의 깃갈이 상황을 고려하면 이 개체의 오른쪽 첫째날개는 약 한달 정도 지나면 깃갈이가 마무리되는 정도까지 진행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재갈매기 깃갈이 시기와의 비교를 통한 사망 시점 추정
한국재갈매기의 첫째날개 p9~10의 깃갈이는 10월에서 11월 사이에 진행되며, 늦을 경우 12월까지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굴업도의 한국재갈매기 깃갈이는 깃갈이가 늦은 오른쪽 날개를 기준으로 11월 중순~하순 정도까지의 깃갈이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굴업도에서 사체로 발견된 이 한국재갈매기는 11월 중순~하순 무렵 죽었으며, 이로 인해 깃갈이가 마무리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 한국재갈매기가 11월 중하순경에 죽었다면 어떻게 현재와 같은 상황으로 남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한 부분은 증거가 없으므로 훨씬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정도의 추측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이 개체가 죽은 것은 겨울이 오기 직전인 11월 말 정도. 아마도 춥고 건조한 날씨와 역시 건조한 모래 덕분에 사체가 썩지 않고 봄이 오기까지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봄철 이동기에 이 섬을 지나가는 스케빈저들(아마도 독수리)에게 몸통의 살을 뜯기우고 살이 그다지 없는 날개만 멀쩡한 형태로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다가 관찰할 새가 없어서 투덜투덜 하릴없이 모래 해변을 걷고 있던 나에게 발견된 것일 수도.
참고 문헌
• Olsen, K. M. & Larsson, H. 2004. Gulls of Europe, Asia and North America.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 Yésou, P. 2001. Phenotypic variation and systematics of Mongolian Gull. Dutch Birding 23: 6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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