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밥 먹다가 만난 Little Pied Flycatcher

[Birds of East Sabah]


Little Pied Flycatcher


Little Pied Flycatcher(female). Liwagu Restaurant, Mt. Kinabalu. 10 August 2016 ⓒ Larus Seeker

  

이번 탐조 여행은 빡세게 진행되리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첫날을 제외하고는 굉장히 느긋하고 널널하게 진행되었다. 10년 넘게 새를 보면서 이렇게 널널하게 새를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고백하자면 이런 느긋한 탐조는 내 스스로의 의지였다기 보다는 Borneo의 기온과 새들의 생태가 나를 그럴 수 밖에 없도록 끌고 갔다고 보는 것이 맞다. 안 그랬다면 내가 Borneo까지 가서 그랬을 리가 없으니까. ^^;

   

Borneo에서 새들은 해뜨기 전(대체로 5시30분 정도)부터 오전 10시 정도까지 하루 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그 후론 전혀 보이질 않다가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슬슬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저 그런가 보다 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새를 볼 때 대낮에는 새들이 별로 없지 않던가. 하여 Borneo에 도착한 첫째날은 설마설마 하는 마음으로 대낮에도 새를 보러 다녔었다. 그 많다던 새들은 다 어디로 간 건지. 도대체 그 많던 녀석들은 다 어디에 숨어버리는걸까? 그렇게 아무 소득을 얻지 못하고 고생 잔뜩인 대가를 치르고서야 대낮의 탐조는 할 일이 아니구나 하는 걸 겨우 알아챘다. '아~ Borneo에서는 낮에는 쉬어야 하는 거구나.' 깨달음을 얻었으니 우화등선하는건가?

  

하여 Borneo에 도착한 둘째날부터는 낮에는 새를 보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럼 낮에는 뭘하지, 뭘할까? 새를 보지 못하는 휴식이 정말 휴식일까? 이런 말도 안되는 괴상한 고민들을 말끔하게 덜어준 건 Kinabalu 국립공원 중간쯤에 위치한 Liwagu 식당. 굉장히 큰 건물에 시설도 매우 좋고 경치도 그만인 멋진 식당이었다. 밥값은 비싸고 맛은 평범했지만. 한끼 식사의 가격이 대체로 5,000원 정도(16~18링깃). 국립공원을 벗어나면 비슷한 수준의 음식을 2,000원 정도에 먹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확실히 비싼 편이었다. 그래도 Liwagu 식당에서의 식사가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건 훌륭한 시설과 훌륭한 정원에 둘러싸인 야외 테라스 때문이었다. 산악 지역이어서 한낮에도 그닥 덥지 않고 초가을같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테라스에서 먹는 점심과 휴식은 정말 훌륭했다. 나는 Kinabalu 국립공원에 머무는 삼일동안 점심은 항상 테라스에서 먹었다. 밥 먹다가도 테라스 앞 나무에 찾아오는 Borneo의 고유종들을 관찰할 수 있었으니까. 여기에서 쉬면서 Borneo의 고유종을 두 종이나 관찰했다. 놀랍지 않은가?

  

Little Pied Flycatcher, 이 녀석도 점심을 먹고 커피 마시면서 슬슬 졸음이 몰려오던 그때 테라스로 날아와 주었다. 이게 웬 떡이래? 졸음이 확 달아나던 순간. 강렬한 인상을 가진 수컷이 아닌 암컷이었지만 수컷은 태국과 캄보디아에서도 본 적이 있었던 터라 암컷이 더 반가웠다. 암컷은 처음 봤다. 얼핏보면 쇠솔딱새로 보이는 외모. 그렇지만 쇠솔딱새보다 훨씬 작고, 허리와 꼬리에 붉은 기운이 나타나는 점이 다르다. 이 녀석도 다리에 금속가락지를 차고 있다. 여기 연구자들은 도대체 얼마나 부지런한 거야?







Kinabalu 국립공원에서 우리의 오후 휴식을 위한 아지트였던 Liwagu 식당의 모습들.

    

Liwagu Restaurant, Mt. Kinabalu. 11 August 2016 ⓒ Larus Seeker

식당이 꽤 큰 편인데 가격이 비싸서 그런지 손님들이 그닥 많지 않아 여유롭게 쉴 수 있다. 손님들은 주로 유럽 사람들.


식당이 굉장히 넓은 편인데 점심시간에도 손님은 많지 않다. 테라스에 앉아 있던 저 백발의 할아버지도 버더였는데 차 마시면서 도감을 보고 있더라.



밥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오후 내내 휴식을 즐기던 테라스. 테라스 바로 아래쪽이 식물원이라 주변에 많은 꽃과 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이 곳이 위도 5도 정도여서 적도에 가까운 지역이었는데도 워낙에 지대가 높아서 그다지 덥지 않았다. 22~24도 정도. 또 머무는 내내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서 우리나라의 쾌적한 가을 날씨같았다. 이 시기 한국은 찜통더위였단다 ^^; 



Liwagu Restaurant, Mt. Kinabalu. 10 August 2016 ⓒ Larus Seeker

바람은 선선하고 새들이 찾아 오고. 좀 더 많은 새를 보겠다는 욕심만 줄인다면 더할나위없는 탐조지였다, Liwagu식당은. 누군가 Kinabalu 국립공원에 새를 보러 갈 일이 있거든 Liwagu식당에서의 식사와 오후 휴식을 강력히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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