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는 집까마귀 House Crow[집까마귀]

[Birds of East Sabah]

 

 

집 떠나는 집까마귀

House Crow

 

 

 

House Crow. KK Waterfront, Kota Kinabalu. 17 August 2016 ⓒ Larus Seeker

  

여행을 준비하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보르네오에는 집까마귀[House Crow]가 살지 않지만 코타 키나발루의 KK Waterfront 근처에는 몇 년 전부터 녀석들이 몇 마리 모여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집까마귀라니!

  

나에게 집까마귀는 단순한 새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2010년 5월 문갑도에서 집까마귀가 우리나라 최초로 발견되었을 당시 함께 했던 인연 때문이다. 당시 최초관찰자였던 송인식선생님으로부터 조금 이상하게 생긴 까마귀가 선착장 근처에 있는데 뭔지 잘 모르겠다는 연락을 받고 산에서부터 단숨에 뛰어 내려가 녀석을 만났고, 회갈색을 띠는 녀석의 모습을 보자마자 녀석이 인도에 주로 살고 있는 House Crow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신종으로 확정되는 순간. 인도에 사는 녀석이 문갑에는 도대체 어떻게 온 건지. 녀석에 관한 자료를 살펴본 결과 무역선을 타고 이동해 왔을 거란 추측을 할 수 있었다. 녀석은 그렇게 도착한 문갑에 터를 잡고 일년여를 살았고, 나는 섬에 갈 때마다 마을 주민분들께 녀석의 생선을 훔쳐 먹는 만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일년이 흐른 후 녀석은 홀연히 섬을 떠났고, 녀석의 소식은 알 수 없었다. 녀석이 떠난 후 섬에 가면 왠지 허전한 마음이 들곤 했었는데 Kota Kinabalu에 집까마귀가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어쨌든 Kota Kinabalu에 집까마귀가 산다면 반드시 봐줘야 할 터. Kota Kinabalu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 녀석을 찾아 나섰다. 녀석이 사는 정확한 위치는 몰랐지만 생선을 파는 시장 근처라고 했던 것 같았고, 택시 기사 Bro에게 Kota Kinabalu의 수산시장으로 가자고 있다. Bro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KK Waterfront 근처. 그렇게 KK Waterfront와 Filipino Market 주변을 뒤지길 한 시간여. 드디어 녀석을 발견했다. 녀석을 뒤쫒아 큰 길을 건너고, 큰 길 안쪽의 조용한 골목길까지 뒤쫒아 갔을 때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메르디앙 호텔 뒤편에 작은 나무들이 서 있었는데, 그 나무들 여기저기에 집까마귀들이 스무 마리 이상 느긋하게 앉아서 꺆꺅 거리고 있는 모습. 왠지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를 만난 느낌이라 할까? 반가운 마음과 뭔가 아쉬운 마음에 쉬이 자리를 뜰 수 없었고, 그렇게 그들의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돌아왔다. 나중에 자료를 좀 더 찾아보니 Kota Kinabalu의 집까마귀들도 무역선이나 화물선을 타고 이 곳으로 몇 마리가 이주해 온것으로 보였다. 이 곳의 집까마귀들은 문갑의 경우와는 달리 여러 마리가 이주해 온 덕에 서로 짝짓기를 하면서 개체수를 늘려갈 수 있었고 이제는 이 곳 수산시장에서 생선을 훔쳐 먹으며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운 녀석들.

 

녀석의 영어 이름이 House Crow인 까닭에 녀석의 우리말 이름도 '집까마귀'로 붙여졌다. 그러나 녀석의 생태를 생각해 보면 집까마귀라는 이름만큼 안 어울리는 것도 없는 듯하다. 녀석들은 살던 도시를 떠나 무역선이나 화물선을 타고 세계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맘에 드는 곳이 나타나면 그곳에 내려 정착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집 떠나는 나그네 집까마귀라니. 그들이 원래 살던 인도 지역이 아닌 우리나라에서라면 오히려 '나그네까마귀'나 '방랑자까마귀'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녀석은 메르디앙 호텔 뒤편의 골목길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먹이는 바닷가에 있는 Filipino Market에 가서 훔쳐 먹고 있는 것 같다. 녀석을 만나던 날도 생선을 훔치다가 상인에게 쫒겨나는 모습을 몇 차례 볼 수 있었다.

 

 

Filipino Market은 Kota Kinabalu Waterfront에서 1~2분 떨어진 거리에 있다. 언젠가 Kota Kinabalu에 가실 일이 있거든 Filipino Market 근처에 살고 있는 녀석을 꼭 만나고 오시길.

 
 

뒷골목의 나무에 이렇게 평화로운 모습으로 앉아서 쉬고 있다.

 

 

 

 

문갑에서 만났던 녀석과는 조금 달라 보이는데 아종 수준(집까마귀의 아종은 4개)에서의 차이일 지도 모르겠다. 영특하면서도 교활한 생활 방식과 달리 녀석의 눈망울은 참 유순해 보인다.

 

 

 

 

이 날은 처음으로 어린 녀석도 만날 수 있었다. 머리의 깃과 부리의 상태로 보아 올해 태어난 녀석으로 보인다. 이 녀석 부모들의 고향은 다른 나라 어디겠지만 이제 이 녀석의 고향은 Kota Kinabalu가 되겠지? 녀석도 어른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화물선에 올라타 어딘가로 떠나려나?

 

 

 

 

바닥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려고 내려온 녀석. 이 녀석은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청소년쯤으로 보인다.

 

 

호기심이 정말 많아 보이는 녀석. 카메라 렌즈를 한참이나 쳐다본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이 녀석의 등깃은 유독 푸른빛을 보여주고 있다.

 

 

수산시장 앞 바다를 날아다니던 녀석.

 

 

녀석이 생선 조각 하나를 어디선가 물고 돌아왔다.

 

 

기다리는 동료에게 생선 조각을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온다.

 

 

House Crow. Mungap Island, Incheon. 9 May 2010 ⓒ Larus Seeker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관찰된 집까마귀. 어쩌다가 이 녀석은 동남아시아(어쩌면 남아시아)에서 우리나라 서해의 외딴 섬 문갑도까지 오게된 걸까? 이 녀석을 만났을 때 신종을 발견했다는 기쁨 못지 않게 녀석이 문갑도에 도착한 상황이나 경로가 더 궁금했었다. 지금도 여전히 녀석이 문갑까지 흘러들게 된 상황이 궁금하지만 녀석이 문갑을 떠나버려서 물어볼 수가 없다 이젠.

 

 

녀석이 문갑에 터를 잡은 후 동네 까치들의 수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워낙에 교활하고 싸움에도 능숙한 녀석이라 까치들의 협공에도 밀리지 않았다는.

 

문갑을 떠난 녀석은 지금 어디에서 터잡아 살고 있을까? 정말 집까마귀가 아니라 '집 떠나는 까마귀'라 불러야 마땅할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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